홧병, 화병(火病), 울화병!!!!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불화로 인한 마찰이 생기는 것을 고부갈등이라 한다. 티비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일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갈등관계다. 드라마 속 고부갈등의 피해자는 항상 며느리가 된다. 설움에 못이겨 부엌 구석에서 소리없이 흐느끼는 모습의 며느리는 그래서인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아침방송이나 라디오에는 시어머니의 구박과 시달림을 꾹 참고 지내다가 중년 이후에 울화병이 되어 여기저기 아프고 감정 조절이 안되며 불면으로 잠 못 이룬다는 며느리 들의 사연이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상황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무조건 참고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고 할 말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는게 좋다는 인식이 강한 시어머니와, 당당하게 자기권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며느리 사이의 갈등에서 시어머니가 화병에 걸리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하는 자식과 며느리 때문에 가사와 육아 마저 떠맡게 되면 시어머니 마음속의 울화는 터지기 직전이 된다.

이런 상황은 장모가 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신고부갈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이는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 말이다. 예로부터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했는데, 최근에는 장모와 사위가 같은 집에 사는 경우도 많고, 육아 때문에 딸, 사위의 집으로 장모가 출퇴근 하는 경우도 많아져서 백년손님이란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서로간의 접촉이 많아지면 갈등도 깊어지는 법. 딸, 사위와의 관계에서 가슴앓이 하는 분들은 점점 늘고 있다. 이뿐일까. 은퇴 후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스트레스도 노년의 여성을 화병나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다. 젊어서는 참고 살다보면 나중에 좋은 날이 오겠지 라는 희망으로 버텼는데, 나이들어서는 그런 희망마저 없다.

화병(火病)이란 쌓인 화를 제대로 풀지 못해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일으키는 병을 말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병명인데,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는 이 화병을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며,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한 바 있다. 화병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아서 일종의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스트레스성 질환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스트레스성 질환은 주로 갑작스럽고 짧은 기간 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는데 반해 화병은 특정한 동일 스트레스를 최소 6개월 이상 장기간 받아서 발병한다.
둘째, 화병은 본인이 어떤 스트레스로 인해 생겼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결방법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살기 때문에 발병한다는 점이다. 시어머니가 나를 괴롭혀서 화병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고, 시어머니를 안보고 살면 나을 거라는 것도 알지만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기에 참고 사는 거란 얘기다.

남성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다는데 그 이유를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남자는 양(陽)이니 기(氣)를 얻으면 흩어지기 쉽고, 여자는 음(陰)이니 기를 만나면 대부분 울체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氣)는 칠기(七氣)를 말함인데, 기쁨, 성냄, 슬픔, 생각, 걱정, 두려움, 놀람의 일곱가지 감정 기운을 말한다. 풀어보면 남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운이 약해지고 우울해지기 쉽고, 여자는 울체되어 울화가 쌓이기 쉽다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곱가지 감정 모두가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중에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다 했다. 그 화나서 성내는 감정(怒氣)이 쌓이고 쌓여서 폭발하면 화병이 되는 것이다. 화병의 주요 원인은 남편과 가족 특히 시댁식구와의 갈등,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사업실패, 금전적 손실, 경제적 어려움, 주변인의 갑작스런 사망 및 사고 등이다. 주로 사람사이의 갈등과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비중이 높다.
화병이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른다는 표현도 한다. 몸이나 얼굴에 열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갑작스런 감정 변화가 생겨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 외에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등의 신체적 증상도 동반되고, 우울하고 불안하며 신경질과 짜증이 늘어난다. 그래서 부부간에 싸움이 잦아지고 불화가 심해진다. 자녀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져서 소원해지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노년의 삶이 행복할 수가 없을 것은 자명하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울화통이 터질때는 매운맛을 찾게 된다. 매운맛을 먹으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라서인지 요즘엔 더 맵게 요리하는게 유행이다. 고추가루만으로는 그 매운맛을 다 살리지 못해서 캡사이신 소스까지 사용하기도 할 정도이다. 그래도 먹는 음식에 천연재료가 아닌 캡사이신 소스를 따로 사용하는 것은 너무하다. 어쨌거나 매운 맛이 혀에 통증을 주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한의학적으로도 매운맛은 기가 막히고 울체된데 효과가 있다. 매운 맛은 뭉치고 쌓인 기를 흩어주고 내려주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특히 무는 크게 기를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을 보면 ‘풀과 나무 약재 중에서 무가 가장 빨리 기를 내리는 것은 매운맛이 있기 때문이다. 무는 매운맛이 있으면서도 단맛이 있으므로 흩는 것이 완만하면서도 기를 내리는 것이 빠르다’고 하였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매운 무 요리를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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